프라하 시내
프라하의 성 비트 사원에 가면 왕궁 입구에 작은 조각이 있다. 그 조각은 체코인을 밟고 서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인 조각이다. 어찌 보면 왕궁의 입구이고, 체코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성당 옆 전 세계에서 1년에 1억 명의 관광객이 오는 장소에 이러한 조각이 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부끄러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이 나라 사람의 생각은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라는 것이었다. 자랑스러운 것만 역사가 아니라 진정한 기록이 역사이고 그 역사가 모여 내일 나아갈 길을 가르치고 문화의 기본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라하에는 바로크 양식, 고딕양식, 로코코양식의 건축물이 한 장소에 같이 서 있는 곳도 많이 있고 이 건물은 서로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침략을 당했고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지만 옛사람들은 300년 이상의 이 건물들을 잘 지켜 내었다.
침략자는 약탈하였겠지만 필요 없이 건물을 파괴하지 않았고 전쟁의 폭격도 피해갔다. 아마 도시에서 게릴라전을 하였다면 건물이 파괴되었겠지만, 워낙 상대가 강대국이어서인지 별로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라면 사정이 좀 달랐을 거로 생각해 본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농사를 짓지 않아 부족한 군량미를 찾고, 승병의 강력한 저항과 의병의 근거지를 제거하려고 심산유곡의 사찰을 모조리 불태운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은 달리 보이기도 한다.
체코도 강대국의 강제적인 힘으로 슬로바키아와 합쳐서 체코슬로바키아로 있다가 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프라하는 시내에 아직 전차가 다니고, 16세기의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후기 고딕의 생활 터전이 그동안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와 과거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문화 예술의 창고 같은 도시이며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동구권이라는 냉전의 학습효과가 남아 잘 사는가? 못 사는가? 에 초점을 많이 맞추고 잘 살면 유적이 많아 관고아 수입이 많아서 그렇고 못 살면 공산주의 치하에 있어서라는 이분법으로만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스스로 중부유럽의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관광산업이 최고의 산업이면서도 외국인에게 이유 없이 친절하지도 않아 관광버스가 도시 안에 주차하지도 못하게 할 정도이다. 문화는 정신이며 문화수준은 개념이 개입되어야 한다. 오래된 건물 속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치장하지 않고 과대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의 화재와 그 복구를 지켜보면서 괜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도시 내의 유적지와 카를이라는 다리, 또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혼자나 몇 명의 악사가 곡을 연주한다. 그들의 옛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이상한 복장을 하기도 하고, 리코더처럼 간단한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지만 앞에 작은 그릇을 놓고 그냥 당당히 연주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으면 동전을 주고 싶은 마음이 그냥 생긴다. 그리고 도심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몰다우강을 바라보면서 이곳이라면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체스키 크놈노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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