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 전쟁 5. 러시아함대의 완패
헨리 정(정영진. 재미 칼럼리스트)
도고(東鄕平八郎)제독이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는 5월27일 이른 새벽 진해 앞바다로 부터 러시아함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대한해협을 가로 질러 파도를 헤치고 출전을 하였다.
“날씨는 맑고 파도는 높다.” 일본 본영에 띄운 개전 전보문 이었다.
날씨가 맑다는 것은 시야가 멀어 적을 잘 관찰할 수 있으며 파도가 높다는 것은 적함들이 울렁이는 파도 수면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함체가 움직여 함포의 명중률이 좋다는- 일본해군에게 최적의 전투조건이라는 의미였다.
오후 1시 30분 대마도와 구주 사이에 도달한 선두 함대에 흑색과 황색으로 띠 두른 러시아 함대의 굴뚝이 망원경 렌즈에 잡혔다.
동서양의 문명이 마주치는 운명의 조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 연합함대의 주력은 6척의 전함과 순양함 8척이었으며 그리고 다수의 어뢰정이 그 함대의 구성원으로 주위에 따랐다.
“황국(皇國)의 운명은 이 결전에 달렸다.” 하는 비장한 도고제독의 결의를 나타내는 <Z>자 표시 깃발이 기함 미카사호에 높이 계양되었다.
처음 일본함대가 러시아의 거대한 발트함대를 발견할 때는 일본해군이 그들의 항로를 T자로 가로막는 전술이었다.
그러나 전투를 피하기로 결정하고 오로지 돌파만을 염두에 둔 러시아 함대는 오른쪽으로 함수의 방향을 꺾어 해상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자연히 양측의 함대는 오른쪽 방향으로 평행선을 긋고 항진하는 그런 모습이 되었다.
평행선으로 달리던 양국의 함대에서는 몇 차례 서로 함포를 주고받았다.
바다에서 일본함정들은 그 속력이 러시아함대에 비해 빨랐다.
러시아함대는 더 낡은 선령(船齡)에 다가 오랜 항해 끝에 배 밑 부분 함체의 표면에 바다에 떠다니던 물고기의 죽은 잔해와 쓰레기들이 달라붙어 그 속도를 더욱 무겁게 하였다.
그래서 일본 함정들이 그 평행선 경주에서 더 앞서 나갔다.
앞서 질주하던 일본함정들이 갑자기 해상에서 U-Turn 하며 한척 한척 달리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적들이 지금 뭘 하는 거지?, 도망가는 걸까?” 러시아 함대의 지휘관들은 멍하니 쳐다보며 황인종들이 하는 짓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리 등절 하고 있었다.
이 때다-. U-턴을 마친 일본함대 선두 몇 대가 가던 길을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좌향좌! 선수를 90도로 왼편으로 돌려 적군 러시아함의 행진 대열 쪽으로 뱃머리를 향했다.
이때 속력이 뒤져 조금 전까지 나란히 달리던 러시아함대의 일열 종대가 마치 사열대 앞을 통과하듯 배 옆구리를 드러내 놓고 직각으로 방향을 바꾸어 서 있는 일본함대 앞을 통과하게 되었다.
일본함대에서 불을 품기 시작하였다.
“1번 함정 사격 개시!.” “쾅!...쾅.!...”
“2번 함정 사격 개시!.” “쾅!...쾅!...”
“3번 함정 사격 개시!.” :쾅!...쾅!...쾅!...“
유선형 모양으로 만든 함정의 뾰족한 뱃머리에서의 함포의 위력은 “날 때리시오-”하듯
배 허리를 그대로 노출하고 지나가는 러시아함대와의 교전에서 삼척동자가 총을 쏘아도 누가 불리할 까는 자명한 일 이었다.
이때 러시아함대의 피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개전 15분 만에 4대의 러시아전함에 일본군의 함포가 명중되었다. 이때까지의 세계 어느 해전에서나 전투의 개념은 일제 사격이었으나 이날 도고 사령관의 전술은 그게 아니었다.
1번 함정이 적의 목표 함정에 사격을 시작해서 그 탄착이 어느 정도 근접 사격인가? 명중인가를 확인 한 다음에 제2 함정이 자기 목표를 향해 “쾅!, 쾅!.” 그리 고 나서 제3 함정이 자기 차례로 적을 향해 포탄을 날려 보내는 연쇄 함포 사격이었다.
일본함대들의 회색 칠은 러시아함대의 포수들이 안개 어린 먼 수평선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또한 일본함대의 프랑스제 포탄은 러시아 해군 것보다 그 화약의 위력이 더 강하였다.
도고 제독이 탔던 기함 미카사에 러시아함대의 포탄이 날라 왔으나 그 피해는 경미했고
모두 16발의 함포를 미카사함에 날려 보냈지만 거의 빗나가 러시아 해군의 함포 사격술이 형편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함대 사령관 도고제독이 이순신장군처럼 해상 전투에서 하마 트면 전사할 뻔했던 위기의 순간이었다.
전투는 1시간 15분후인 오후 2시45분에 그 승패가 판가름이 났다.
러시아함대의 정렬은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오후 3시 또 하나의 큰 전함이 옆으로 기울러지며 침몰하였다. 함대 사령관 로데스트벤스키제독이 탄 기함이 전열에서 벗어 나 허둥대는 모습이 보였다. 그 기함의 함교에 포탄이 날라 와 함교가 크게 손상을 입었고 그때 <로>제독은 머리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 .
그래서 사령관은 다른 작은 배로 옮겨 타며 그 총 함대의 지휘권을 부함대장 니콜라스 네보케타프 제독에게 넘겨주었다.
그때 다른 함정 알렉산더호가 이제 전 함대의 기함 노릇을 하게 되었다.
알렉산더호는 방향을 바꾸어 탈출을 시도 하였으나 일본함대가 가로 막아 사정없이 포격을 가하였다. 갑판에 불이 붙었고 오후 7시에 침몰하고야 말았다. 그때 그 함상에는 900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으나 모두 애함과 같이 수장되었다.
이때 또 다른 함정 Borodino호가 근처 해상에서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
그날 밤 도고제독은 그의 휘하 함대를 일단 대마도 해협에서 철수, 패주하는 잔여 적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동해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면서 구축함과 소형 어뢰정들에게 도망가는 러시아 함정을 울진 앞바다까지 추적하도록 명령하였다.
남은 러시아 함대는 새 지휘관 니콜라이 제독의 진두지휘로 일단 돌파 작전을 포기하고 남해로 진로를 바꾸어 남지나해의 오던 길로 후퇴하였다.
그러나 연료가 거의 바닥이 나 더 멀리 남지나해 해상이나 태평양 쪽으로 나아 갈 수도 없는 형편, 제주도 남방 수백 킬로 해상에서 다시 원을 그리며 대마도 쪽으로 탈출을 시도해 보았다.
5월18일 새벽녘 바다에 가로막고 서 있는 일본함대에 포위되고 말았다.
그 지휘관은 진퇴양난의 상항에서 패배를 느끼고 항복을 알리는 깃발을 내 걸게 되었다.
그는 종전 후 러시아 군사 법정에서 그의 비겁한 행동에 책임을 지워 사형언도를 받고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양일간의 대마도해전은 음악노트의 오선 상에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를 그리듯 절묘한 곡선을 그리며 우회전(迂回轉), 그리고 정지, 좌향 좌- 사격 그 리듬미컬한 모습은
음악과도 같았고 율동과도 같았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 “바다의 교향곡”이라는 제목을 본 따 “바다의 교향전(交響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 첫 해전에서 도고 제독이 항로를 U-턴한 그 순발력은 그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의 원인이 되었으며 일본국민들이 그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계시라고 <신(神)의 U-턴>이라며
허겁을 떨고 있었다.
5월27일, 5월28일 양일간의 전투에서 발트함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하게 되었다.
38척의 군함 가운데 19척이 격침되었고 그 중 주력 전함 6척과 순양함 3척이 포함되어 있었다.
항복 후 포획 된 함정은 전함 2척을 포함 모두 7척이나 되었다.
순양함 한척과 구축함 2척은 블라지보스톡 항에 겨우 도망 쳐 왔다.
함대 중 후방에 있던 순양함 3척은 반대 방향으로 피신하여 6월 초 필립핀 마닐라 항에 기어들어 갔으나 미 해군에 의해 억류되었다.
기타 보조 선박 수척이 중국의 상해등지로 도주하였다.
이 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은 4,800명의 장교와 수병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숫자는 전체 발트함대의 병력수의 절반에 해당된다.
6,000여명의 러시아 해군이 포로가 되었다. 물론 함대 사령관 <로>제독도 그 포로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반면 일본해군 측의 피해는 3척의 어뢰정을 잃었고 117명이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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