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 전쟁 4.발트함대의 대 출정
헨리 정(정영진. 재미 칼럼리스트)
여순항의 태평양함대가 완전 붕괴되기 몇 개월 전,
세계 최강으로 알려진 러시아 발트함대가 극동의 전세를 뒤집고 말겠다고 원정길에 나섰다.
황제 챠르 니콜라이 2세가 손수 Revel항에서 거행되는 출정식에 참가, 격려를 해 주었고 먼 항해를 떠나는 환송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하였다.
때는 1904년 10월9일.
그 거창한 출정은 좀 지나치기도 하고 그릇된 표현으로 세계 신문들의 지면을 요란하게 수 놓았다. 이 함대의 출동을 지켜보던 러시아 국민들과 세계인의 눈은 “일본 너 인제 죽었구나-”하고 여겼다.
북대서양을 떠난 함대의 항로는 스에즈운하를 통과하여 동 아시아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때 영국은 영일동맹의 파트너로서 일본 측 편이었기 때문에 발트함대의 원정을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에즈운하는 지금 수리중이라는 이유로 러시아 측에 그 통행은 불가라는 통지를 보내었다.
그리고는 괜히 운하 양편 언덕에서 화약 터뜨리는 소리를 펑! 펑! 내며 새빨간 거짓말을 위장하고 있었다.
발트함대는 할 수없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지구를 반 바퀴 돌만치 먼 거리로 항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28,000Km에 달하는 긴 항해를 8개월이나 걸려 떠 가던 그 긴 여정에는 경험 미숙, 지연, 생각치도 못했던 난관 등 많은 애로가 있었다.
전 국민의 명장으로 떠 받들던 마카로프제독이 사망한 후 러시아해군의 가장 탁월한 지휘자로 인정받던 로데스크벤스키 부제독(56)이 이끄는 이 함대는 그 승무원들이 대부분 비숙련, 농삿꾼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의 사관 중 대부분이 경험 부족인 장교들이었다.
42대에 달하는 전체 함정 중 4척의 전함과 4척의 순양함은 비교적 새로 건조된 신형 함정이었으나 나머지 함정들은 대단히 낡은 것들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데스크벤스키 제독과 그의 지휘관들은 그들의 출동은 꼭 승리를 앗아 올 것 이라고 자신했고 그 전승의 꿈은 곧 실현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우렁찬 출정은 처음 항해 때부터 삐걱 거리기 시작하였다.
기지를 떠난 지 1주일이 지나 신나게 항진해 가던 함대의 전방에 얼렁거리는 몇 척의 소형 선박이 시야에 들어 왔다. 대서양의 짙은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잡힌 그 선박들은 발트함대의 진로를 정탐하는 일본 정찰선으로 오인하고 함대에서 불을 품어 그 중 2대의 ‘적
선박’을 그 자리에서 격침시켜 버렸다.
적군 소탕을 한답시고 각 함정에서 쏘아 올린 함포가 같은 우군인 러시아함대의 순양함 갑판에 떨어져 피해를 입힌 오발 사고가 생겼다.
“무찌르자 일본군 몇 백만이냐~러시아 남아 가는데 ‘조개’로 구나~”하며 군가를 부르며 아무데나 쏘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적 초계정으로 여긴 그 작은 배들은 조업 중인 영국 어선 트롤선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영국에게 백배 사죄를 하여야만 하였다.
그래서 최강 영예를 안고 있던 러시아 발트함대는 전 세계로부터 ‘미친 개 같은 함대’
(Mad dog fleet)라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들의 길고도 먼 여정은 느리고도 지지부진하였다.
함대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지나 동 아프리카 마다가스칼 섬을 지날 무렵 그들의 행선지였던 여순항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1905.1월)
황제 챠르는 그의 무적함대는 그 만한 규모라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해 나가리라고 생각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난관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함대가 아프리카 동해안을 항해 중 전 함대의 연료(석탄)가 바닥이 났다.
이 항해 작전에서 연료 공급은 독일의 한 협력 업체가 공급을 해 주기로 계약했으나 그 계약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그 공급 회사가 “나 몰라-”하고 발을 내 밀었다.
그들의 행선지인 여순항이 함락되었다고 하니 그 출정의 목적도 상실되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블라지보스톡이다 하고 변경하고 전투보다도 안전하게 자국 항구에 도달하는 것만이 소기의 목표였으며 연료문제로 그 근처에서 2개월을 그냥 머물러야만 하였다.
러시아 본국에서는 10여척의 보급선을 추가로 보내 주었다.
그 배들은 요행이 영국 정부의 양해를 얻어 스에즈운하를 통과 할 수 있었고 인도양 상에서 발트함대 본대와 겨우 합류하여 연료와 보급품을 조금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대 함대가 항해 하는 중 연료(석탄)와 식량, 식수들은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자체 조달할 수밖에 없는 상항에서 항해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진로인 아프리카 동해안, 인도, 남지나해의 말레지아, 싱가포루 모두가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식민지였기 때문에 거기 어느 항구에도 기항을 허가받지 못하고 겨우 프랑스령 월남의 캄랑만에 도착하여 목마른 갈증을 해결 할 수 있었다.
즉 석탄,식료품,식수등을 겨우 구입하여 보급품을 배에 실었으나 그들의 유일한 희망인 블라지보스톡에 도착하기에는 충분치가 않았다. 그래서 거기에서 다시 90Km 떨어진 다른 항구 반퐁에 기항하여 좀 더 연료를 조달할 수 있었다.
5월17일 발트함대는 반퐁항에서 출발하여 목적지인 연해주 블라지보스톡항을 향해 떠났다. 그 항로는 세 갈레의 선택해야 할 옵숀이 있었다.
대한 해협을 가로 지르는 최단거리, 일본 본도와 북해도 사이 협로, 북해도를 우회 하는 길.
그래서 <로>사령관은 도박과 같은 승부수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면 돌파다-, 대한 해협을 가로 질러 가는 것이다-”.
5월25일 발트함대는 한반도 남쪽 남지나해를 들어서며 속력을 낮추고 무선도 끊은 채
소리없이 북상을 계속하였다.
머나 먼 항해를 8개월이나 계속하는 동안 배를 몰던 장교와 수병들은 지칠데로 지쳤고
그 전투력과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목적항인 블라지보스톡까지 항해하는 데는 연료가 모자랄 듯하여 이때부터 함내에 있는 모든 목제가구(침대,책상,서랍등)는 모두 갑판으로 끌어 올려 땔감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사령관은 전투는 피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다만 빠져 나가는 것만이 희망이었다.
무장함대들이 맨 가상자리에 1렬 종대로 나아가고 가운데 줄에는 비무장함대인 병원선, 보급선, 연료선등이 들어서 줄을 짓고 다른 바깥 줄은 다시 무장 전함, 순양함들이 줄 지은 매머드 함대가 3렬 종대를 이루며 조심조심 대한해협에 진입하였다.
함정들에게는 모두 탐조등과 불을 끄게 하고 어둠 속에서 야간 돌파 작전을 편 것이다.
이때까지 마산만 앞에 진 치고 기다리던 일본 연합함대는 발트함대가 극동 지방에 접근하고 있을 것 이라는 짐작은 하였지만 도대체 어느 항로로 블라지보스톡에 향할까?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삼일...진해 근처 남해에서 길목을 지키던 일본 연합함대는 초조하게 러시아함대를 기다렸으나 어느 곳을 뚫고 지나 갈까는 캄캄한 상태였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대한해협에 나타 날 기미가 없으면 북해도 쪽으로 방어기지를 옮기겠다고 본국 정부에 타전을 보냈다.
5월 27일 새벽 2시45분, 일본 순양함 시나로마루호가 발트함대 병원선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밤바다에서 포착하였다.
이 정보는 곧 도고 사령 함대에 무전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다른 순양함 이즈미호는 이 병원선을 미행하며 그 해상 위치를 시시각각 보고했다.
잠에서 깬 도고 제독이 즉각 전 사령 참모를 불렀다.
도고 사령관 상항실에서는 러시아 발트함대의 항로를 드디어 알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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