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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러일 전쟁 7. 후기(後記), 한 러시아군함의 기구한 운명

빛의 도둑 2018. 3. 5. 15:10

 

러일 전쟁 7. 후기(後記), 한 러시아군함의 기구한 운명

 

                                                                헨리 정(정영진, 재미 칼럼리스트)

 

탄탄한 무쇠로 만들어 져 사나운 동물의 뿔보다 더 무서운 함포를 겨누고 그 위용을 자랑하는 “군함”이란 낱말은 여성명사이다.

그래서 그 우렁차고 씩씩한 장갑무장선이 바다에 떠가는 것을 “그녀(She)는...”하고 3인칭 여성대명사로 불리 운다.

 

한 러시아군함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어느 불우한 여인의 슬픈 인생유전처럼 그 운명이 기구하다. 속된 말로 팔자가 세다.

 

제정 러시아는 세계에서 제일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서 그 다음은 바다로 진출할 해양국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19세기 말부터 해군력을 키우려는 야심의 일환으로 군함 한척을 미국에 주문, 최신 정예화한 무장 전투함을 갖고 저 했다.

수주를 맡은 미국 펜실바니아 크램프스(Cramps)조선소에서는 숙련공들이 달라붙어 튼튼한 강철 군함을 만들어 1902년 러시아에 인도하였다.

 

러시아에서는 그 새 군함을 Varyag(바략? 바르야그?)라고 이름 지었다.

Varyag라는 이름은 Varangians라는 10세기 무렵, 러시아 연안 북해와 내륙 볼가강을 무대로 활개 치던 용감무쌍한 해상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해상 무역과 때로는 바닷가 소수민족도 정벌하고 해적질도 해 먹고 살던 러시아판 바이킹인데 자기네도 일찍이 해양 국가 이었노라 하며 그 이름을 따서 붙였다.

 

바략함은 전장 120m에 폭은 15m, 톤수는 6,500톤인 대형 군함은 아니지만 야무지게 만들어 진 중형 전투함이었다. 승선 인원은 570명.

 

러시아 해군이 인수한 이 바략함은 러시아 태평양함대에 보내져 여순항에 배치되었다.

여순 러시아해군기지(port Arthur)안에서는 이 최신 바략함이 가장 멋지고 최신예함이라고 제일 좋은 도크에 정박하게 되고 그녀(?)가 움직일 때는 다른 함정들을 모두 치우고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는 등 마치 왕자나 공주 대접을 받았다.

이 바략함은 1903년 12월 17일 대한제국 제물포항으로 발령이 난다.

그때 대한제국에서는 동학꾼들이 또다시 봉기를 일으켜 외국인들을 모두 죽인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각국은 자기네 공관 외교관과 거주민 보호라는 구실로 제물포항에 군함을 상주시키고 병력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이는 단지 구실일 뿐 각 열강이 군함들을 제물포항에 정박, 상주하고 있는 속셈은 만일 다른 나라가 조선을 삼킬 여고 상륙하면 우리도 상륙한다 이 ‘파이’를 너희만 먹을 수 있으랴? 그런 심산이었다.

 

바략함이 제물포항에 들어 와 정박한지 한 달 보름 만에 일본함대의 공격으로 이 군함은 최초의 비운을 맞게 된다.

일본해군에게 항복하느니 자결, 침몰시켜 버려 물에 가라앉게 된다. (필자의 글 러일전쟁 2 참조)

이 군함은 일본해군이 나포해서 끌고 가려 던 사냥감 이었다.

그러나 이 바략함이 자살 침몰하며 빠트린 제물포항의 수심이 너무 낮아 한쪽만 가라 앉고

일부는 수면 위로 솟아 있어 후에 일본해군이 인양하여 자기네 해군 수리창에서 보수하게 되었다.

일본해군이 수리한 후 소야(小野)라는 이름으로 해군 훈련함으로 쓰이다가 그 쓸모가 별것 없으니까 전쟁 후 다시 러시아에 팔아 넘겼다(1916)

 

러시아는 이 함정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걸 돈 주고 다시 되돌려 받았다.

때는 독일과 맞서 싸우던 1차 세계대전의 와중 이었다.

그래서 북해에 내 보내 독일 해군과 맞서 싸우라고 해전에 투입하였으나 전투 중 피격을 당해 고장을 일으키게 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 피해 입은 군함을 긴급 수리하기 위해 영국에 보내져 리버폴항에 수리를 맡겼다.

 

그러나 수리 중 러시아에서는 마침 공산혁명이 일어 나 (1917년 10월혁명) 수리비를 못 낼 형편에 1차 대전이 막을 내렸다.

영국 조선소는 러시아 제국에서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주의 연합국>이라고 부르기 조차 이름이 기다란 나라로 바뀌어 수리비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리비 체납이 되어 영국에서 압류하게 되었다.

개인도 자기 차가 망가져 수리업소에 맡겼으나 그 엄청난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 그 차를 포기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 수리업소 앞을 지나다니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여보시오!, 왜 빨리 차 안 빼가?” 하고 소리 지를 가봐-

 

영국에 압류된 이 바략함은 공산 소련이 수리비를 다 치루고 찾아 갈 가망이 없어 보이자 어디 고쳐서라도 사용할 수 있을까?하고 망치로 여기저기 두들겨 보고 살펴보았으나 너무 낡았고 고쳐도 사용가치가 전혀 없을 것 같아 고철로 파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독일과 교섭해서 1923년 독일에 고철로 판매하게 되어 결국은 해체되고 엿장수들이 수집해 온 고철더미와 함께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속에 사라지며 그 기구한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고 화장(火葬)되어 하늘나라로 간 그 바략함이 망령이 되어 바로 우리 옆집에 되 살아 났다.

100년 전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그 비운의 바략함이 우리 곁에 부활하다니?-

지금 지척거리인 요동반도 대련항에 누워 있다. 다시 환생한 것인가? 

 

 

 

1980년대 미.소 냉전이 치닫고 군비확장에 여념이 없던 시절, 소련이 거대한

항공모함을 하나 건조하기 시작한(1985) 것은 국방 계획에 의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건조가 시작된 항공모함은 원자력 추진 핵 항모는 아니고 전장 304m에 6만톤급 해비 항모였다.

그런데 소련에서는 그 항공모함의 이름을 옛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바략함의 향수를 못 잊어 똑같은 이름인 바략(Varyag)함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니 용광로 속에 용해된 바략이 살아 부활한 것이 아니고 동일 명칭으로 세상에 태어 난다른 배이다. (同名異艦)

서양식 족보로 따지자면 러일전쟁의 비극의 주인 그 군함은 바략 1세이고 소련에서 그후 80년 만에 다시 만들어 지고 있는 새 항모는 바략2세이다. (혹은 부자간의 구분처럼 바략

Senior, 바략 Junior이라고나 할까?)

 

24억불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퍼붓기로 하고 건조하고 있는 이 세 항공모함이 70% 공정까지 이르는 즈음 불행히도 소련이 1991년 붕괴되고 바략 2세의 운명도 태어나기 전에 벌써 그 팔자가 순탄치 못하였다.

공산 소련이 산산 조각이 난 이후 그 바략 항모는 건조지의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로 소유권이 넘어 가게 되었다.

그러나 재정상태가 빈약한 우크라이나는 그 항모를 다 완성할 때까지 소요 될 5억불이 없어 1992년 그 건조 공정을 중단하게 되었다.

 

동서 냉전도 가시고 우크라이나는 이 덩치를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어 결국은 미완성 상태에서 팔아 치우기로 하였다.

1998년부터 세계 몇 군데에서 원매자(願買者)가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가깝게 손을 뻗고 있는 구매 희망자는 마카오의 유흥업자였다.

그들은 자기네 배후에는 카지노의 대부가 ‘큰손’으로 있다고 암시하며 이 항공모함을 사서 마카오에 끌고 가 카지노 복합 유람선으로 개조하여 호텔방 600개의 객실과 레스토랑, 캬바레, 카지노장을 8억불을 들여 만들어 마카오항 앞바다에서 해상 유흥장으로 쓰겠다는 제안이었다.

 

세계의 언론은 재미있는 기삿거리가 생겼다 하고 기자들이 몰려 와 취재 경쟁이 열을 뿜었다. 이 항모를 사겠다는 유흥회사는 청 로트(Chong Lot)이고 이 ‘청 로트’는 첸 카이 킷트(Chen Kai Kit)의 한 동업자이고 ‘첸 카이 킷트’는 홍콩에 있는 찡 럭그(Chin Lock)지주회사의 한 방계회사이고, 그 배후에는 마카오 카지노의 대부 스텐리이 호(Stanley Ho)가

있다고 소문을 냈다.

 

서방 기자들이 이 낯 설은 중국 발음 ‘청’ ‘첸’ ‘찡’을 모두 따라 외우며 마치 신약성서 첫머리에 나오듯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하는 방정식으로 모두 추적을 해 보려도 헷갈려서 도무지 뭐가 뭔지를 따라 잡지를 못해 그 자금원을 캐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런 복잡한 다단계 물주를 내 세우며 2천만불에 사겠다고 오퍼를 내 놓았다.

 

그러나 이 청, 첸, 찡..어쩌고 저쩌고 깡통 두르리는 소리로 내 세운 도박기업들은 다 위장회사로 그 ‘검은손’의 실세는 중화인민해방군이라는게 금새 들어 나고 말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면 태양이 다 가려 지는 줄로 알고 거짓말을 하면 그게 곧 상대방에겐 진실로 통하는 줄 안다.

마카오 앞바다는 수심이 낮아 그런 큰 유람선이 정박해 떠 있을 수 없는 상식도 모르고 그런 위장, 연막을 쳤다.

그래서 그때에야 중국 정부가 나서며 사실은 우리가 사서 그 항공모함의 설계와 구조를 연구한 다음에 고철로 쓰려고 했던 것 이라고 실수요자임을 나타내었다.

 

무슨 번영회 회장이네 방범회장이네 감투가 즐비한 동네 유지가 어느 고물상 가게에서 때 묻은 헌 양은 손냄비를 1,000원에 사서 들고 나가면서 “우리 강아지 개밥 끓여 주려고”하며 옹색한 변명을 하고서는 집에 가져 와 자기의 라면도 끓여 먹고 된장국도 끓여 먹을려고 위장 은폐하는 꼴과 같다.

명색이 대국이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개국 이래 처음으로 갖게 되는 항공모함을 그걸 손수 만들지 못하고 남이 만들다 버린 항모를 주어 다 자기 나라의 최초의 항공모함을 만들어 내 놓겠다고 하기가 창피스러워 조사, 연구 끝에 고철로 쓰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2001년 매매 계약이 체결되고 그 걸 끌어가기로 하였다.

이제 마카오 유람선 운운하는 가면극은 세상에 까 벌려 졌으니까 그걸 마카오로 끌고 갈 필요도 없이 곧 바로 중국 본토로 끌고 갈 심산이었다.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길목에는 터어키가 있다.

이번에는 터어키 정부에서 브래이크를 걸고 나왔다.

보스폴로스 해협에 큰 항공모함이 통과하는 데는 이스탄불 큰 다리 교각을 다치게 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이 바략 항모를 끌고 가는데도 수개월이 지연 되었고 몇 개월 후 터어키는 그 통과를 허가해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스에즈운하 통과는 “No".

그래서 예인선에 끌려 먼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요동반도 대련항에 도착하기 까지는 627일이란 많은 시일이 걸렸다.

 

2002년 3월 대련항에 입항한 항모 바략은 도크에 정박해서 인민해방군 해군의 색인 회색칠로 페인트 분장을 다시 하였다.

세계의 군사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중국 정부에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며 물고 늘어졌다.

과연 설계와 구조를 연구 한 다음 고철로 폐기 처분 할 것인가?

그 세계에서 쏠리는 의구심에 가득 찬 시선이 하도 따가워 중국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설계 구조의 연구가 끝나면 훈련용 항모로 쓰릴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의 이목은 아직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중국은 자국 최초의 항공모함을 남이 짓다 버린 항공모함을 뜯어 맞추어 해상에 “나도 항모 만들었소-“하고 내 보내기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서 그 진심을 은폐하고 있었다.

세계의 여론과 시선에 드디어 그 속셈을 드러내게 되었다.

“아니다-, 연구가 끝나면 더 보강해서 실전 배치도 할 수 있다.”

 

대련항에서 나머지 공정을 마무리 짓고 있는 그 바략함은 고철용이네 훈련용이네 거짓말을 하고서는 함교에는 레이다 장치도 설치해 놓고 함재 조종사도 50여명 이상 훈련시키고 있었다.

다 완성 되면 그 항모의 이름을 <마우(馬牛)뗏똥호(號)>라고 지을 지 <후진(後進)타오호(號)>라고 지을 지는 자기네가 할 일이지만 그게 서해에 떠 있어 날마다 훈련한답시고 전투기, 폭격기가 뜨고 내리며 우리 근해를 불안하게 한다면 우리는 마음 편치 못 할 일이 하나 더 늘게 된다.

 

현재 중국 상해에서 자국산 항공모함이 건조 중에 있으며 잘 하면 내년 7월에 진수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 대련항의 바략 항모를 해상에 띄어 내 보낼 것 같다.

그래야만 중화인민해방군 최초의 항공모함은 “Made in China"이고 우크라이나에서 산 바략 항모는 그 다음이다 하고 세계에 체면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enry Chung
글쓴이 : 추풍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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