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부산에서 생활한 나는 한 때 천성산을 아주 좋아하였다. 1979년쯤 그해 한 해는 일년 내내 천성산만 올랐다. 봄이 되면 새싹이 좋고 여름이면 계곡이 시원하고 각 계절은 제마다 특색을 가지고 날 불렀다. 안적암도 좋고 원효산 줄기도 좋고 법수원도 아름답고 모든 코스 모든 능선이 다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때 쓴 글을 [사람과 산]기자가 받아가 천성산을 소개 할 때 인용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서면 적십자 건물쯤에 시외버스 주차장이 있었는데 통도사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용연에서 내려 5킬로 정도의 계곡 길을 걸어서 내원암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든가, 울산 가는 버스를 타고 서창에서 내려 걸어서 올라갔으니 지금은 참으로 편해졌고 산행시간도 많이 짧아진 것 같다. 요즈음도 별로 약속이 없으면 천성산을 찾아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코스로 호젓한 등산을 즐기곤 한다.
박 XX라는 선배는 미식가이다. 이분은 계곡에서 민물 새우를 잡거나 파리낚시를 하여 피리를 잡아 튀기거나 조려서 술안주를 하였고, 겨울에는 다슬기를 삶아 보신을 하거나 큰 돌을 바위에 두드려 기절한 고기를 조려 먹거나 또 개구리 뒷다리를 불에 구워먹고, 메뚜기나 여치를 구워 먹고, 봄이면 두릅나물, 더덕이나 도라지, 여름에는 산딸기 머루... 그러다가 간혹 뱀도 한 마리 잡기도 하고 어디서 꿀을 따오기도 하고 완전히 자연식 먹으러 산에 가는 분이셨다. 나도 따라 다니며 괜히 입맛 만 고급이 되어버렸다. 한 번은 오대산에서 투망을 빌려 고기를 잡아 튀김해 먹고 남은 고기를 말린다고 널어놓았는데 자동차가 지나가는 통에 모두 납작해져서 버린 적도 있었다. 이 선배는 힘든 등산은 한번씩 빠지지만 야영을 한다면 하면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우리에게 재미있는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셨다.
또 한 번은 시명산 저수지 부근 잔디밭에서 야영을 하고 고무보트를 타고 놀았는데 돌아와 보니 밥이 들어있던 코펠과 버너가 없어져버렸다. 스웨덴제 스베아 버너는 제법 비싸 항상 감추어 두곤 하였는데 없어져 버렸으니 찾으러 다녔다. 그러다 어느 농가에 가 보니 찬장에 스베아와 포에브스 바나가 8개나 있었다. 이집 아들 녀석이 야영하는 사람 술 먹고 잠든 틈을 기다려 버너만 훔친 것이었다. 그래서 엿장수나 고물장수에게 넘겼는데 그 때 바나 한대 살려면 월부로 사야 할 만큼 비싼 것이었는데 고물 값으로 넘기다니... 어찌되었건 찾기는 찾았으니 참 용하기도 하다.
몇 해 전 은행장이 참석하여 천성산에서 영남지구 지점장 등산대회을 할 때 코스를 내가 정하게 되었다. 그 은행장은 산에서 얼마나 빨리 걸으시는지 같이 가는 사람이 아주 곤욕을 치른다는 정평이 나 있었다. 나는 우리 지점장들이 나이 많은 은행장 보다 느리게 걸어서 혼이 나서는 안 되겠다 라는 생각에, 또 등산 전 날 저녁 은행장이 술을 아주 많이 잡수실 것으로 예상하여 초반에 아주 가파른 코스로 정하였다. 역시 전날 저녁 엄청 많은 술을 마신 은행장은 자연히 빨리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깊은 속도 모르는 일부 지점장은 누가 이런 코스를 선택하였느냐고 불평을 하자 그 분은 모든 것을 아시면서 자기가 코스를 정했다고 하여 아무도 말을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등산을 마치고는 정말 아름다운 산이었고 멋진 코스였다고 칭찬을 하셨다.
좋은 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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