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가 들어 조금 고참이 되었을 때 아주 고약한 선배가 되어 후배들이 재미는 있어 하였지만 괴로워하기도 했다. 지금도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 겸 고백을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혼내기 위하여 괴롭힌 적은 한번도 없었다.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장래 멋있는 산쟁이가 될 만한 사람들에게만 좀 심한 장난을 쳤다. 그 중 정 XX는 너무 멋있는 후배고 성격도 좋아 단골 심통 타켓이 되었다. 먼저 등산을 잘 할 수 있는 체질인가를 테스트 해 준다고 차렷 자세로 세워 놓고 종아리 부분을 앞으로 당기는 거다. 대부분 꽈당 하고 쓰러 졌고 또 거의 다 이 절차를 당했기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뭐 나만 즐거웠나 뭐.... 정 XX가 독일제 수통을 사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였다. 나는 구경 하지고 하여 년대와 역사를 넣어 준다며 돌멩이에 두드려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 외에도 침낭 속에 개구리 넣기, 둘이 던져서 물에 빠트리기, 새로 나온 케찹이라며 와사비 먹이기, 간장이라며 콜라 먹이기, 콜라라며 간장 먹이기, 산행 후 다리 풀어 준다고 토끼뜀시켜 다리 더 모이게 하기, 벗어 놓은 옷 뒤집어 놓기, 탠트 바닥에 굵은 돌 숨겨 놓기, 생 달걀을 삶은 달걀에 섞어 놓기, 버스에서 화장실 간다면 참으라고 윽박지르기, 잠잘 때 발가락 신발 끈으로 묶어 놓기, 식당에 밥 먹으러 갔을 때 신발 섞어 놓기, 말린 빨래 다시 적시기, 밥할 때 몰래 물 더 붓곤 밥 못한다고 구박하기...그 강력한 심술을 이겨낸 정 XX후배는 지금 훌륭한 직원으로 장래가 촉망되니 그것이 다 나의 공인데 본인은 이제야 조금 아는 것 같다. 헤 헤 헤...
70년대 내가 소속한 산악회의 회장님은 모 국립대학교 사범대학장 이셨는데 전공과목이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회장선거는 꼭 이상하게 어르신들만 숙덕숙덕하여 연임하시곤 하여 한번은 총회에서 긴급동의를 하여 직접선거 다수결로 하자고 해 통과시켜버렸다. 그리하여 당초 계획이 무산되고 전혀 생각도 안하시든 분을 회장으로 뽑아 버렸다. 이런 건방진 후배들을 어르신들이 곱게 볼 리가 없어 두고두고 혼이 났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속은 후련하였고 산악회도 조금은 발전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가 선거로 뽑은 분은 정말 존경할 만 한 분이셨다. 구서동의 자기 땅에 건물을 짓고 길가에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키우고 이름 지어주고 또 입양까지 해주는 사회사업을 하시다 연세가 드시자 전 재산을 시에 헌납하고 종신 고아원장으로 세상에 봉사를 하신 분이었다. 비록 우리가 그 분의 농장에 가서 몰래 닭도 잡아먹고, 맛은 없지만 연못의 비단잉어도 잡아먹고, 또 그 뼈를 땅속에 파묻었다 개에게 들켜 혼은 났지만 아량은 바다처럼 넓고, 사랑은 한없이 깊어, 한 생명을 대 숲에 흐르는 바람처럼 욕심 없이 헌신 하신 그 회장님을 아직도 존경한다.
이제 나이도 조금 먹어 -그러나 철은 아직도 우리 아들보다 덜 들었지만- 싱겁게 장난이나 치고 다닐 수도 없고, 에헴하고 다니기엔 어림도 없고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직장에서 생존경쟁에 매달려야 하고 부인과 자녀를 어거하여 세상살이도 힘들고 모두 너무도 바빠 산행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있으니 모이기가 쉽지 않다. 또 요즈음의 산악회는 옛 날처럼 그런 풍류도 없어 인간적인 따뜻함이 모자란 것 같아도 기본적으로 산에 가는 사람은 산에 가는 그 행위만으로도 순수함을 간직한다는데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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