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쯤 부산 본부에 근무할 때 우리 본부장인 상무님께서 등산을 아주 좋아 하셨다. 서울에 계실 때는 주말에 항상 산행을 하셨다는데 그래도 그렇지 개인의 취미인 등산을 가면서 직장 상사를 모시고 가는 것은 좀 그렇긴 하다. 그런데 아주 친한 친구가 일이 좀 잘 못되어 그 분의 눈에 나게 되어 내가 같이 등산을 가자고 하여 일정을 잡게 되었다. 쉽게 말해 사교성 등산을 간 것이다. 장소는 서울 분들이 가기 쉽지 않은 가야산을 백운동코스로 가기로 하였다. 초겨울 눈이 조금 왔고 먼 정상에는 눈이 제법 쌓여 운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전날 저녁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며 우리들의 입장도 설명을 잘 하고 하여 아침 상쾌한 출발을 하였다.
그러나 그 분은 안색이 좀 밝지 못 하드니 산행 중 자꾸 숲으로 가시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전날 마신 막걸리가 좋지 않아 배탈이 났는데 산에서 어쩔 수도 없고 오르자니 힘들고 그렇다고 내려오자니 아까워하시고 제법 쉬다가 결국 정상을 밟고 해인사족으로 하산 하였다. 그러나 부하들과 같이 모처럼 좋아하는 등산을 하는데 하필이면 배탈이 났으니.... 그래도 우리가 미안해할까 봐 끝까지 산행하신 그 분을 아직도 여러모로 존경한다.
또 지점에 근무할 때 지점장님들이 지리산 등산을 했는데 술을 좋아 하시는 우리 지점장님은 정상에 가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러드니 다음 주말에 나를 보고 지리산에 가지고 하셨다. 내가 안내하여 전번 코스와 같은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고 내리는 코스로 갔는데 무척 힘들어 하셨다. 아주 천천히 오르면서 지점장은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하는데 나는 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결국은 정상에 도달하였고 다음날 출근하기가 바쁘게 증인인 나를 데리고 본부에 가셔서 등산을 마쳤음을 자랑하셨다. 남자의 세계에서 신체의 조건이 어떠하든 약점을 잡히면 안 된다. 또 잡혔다면 바로 회복하여야 한다. 그러나 저러나 지리산을 등산하면서 올라가면서 추웠던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다.
오래지 않은 이야기하나 영취산 등산을 안내하였는데 정상 바로 아래 길로 하산하였다. 이 길은 아주 옛날에 호젓하여 즐겨 다니던 길인데 20년쯤 지나 다시 내려 가보니 덤불과 잡초가 얽혀 도무지 진도를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길을 잘 못 들었다고 다시 오를 수도 없고 길은 없고 점점 경사는 심해 위험 하기도 하고 낭패였다. 다행히 적당한 코스를 잡아 내려왔지만 고생은 좀 하였다. 20년전의 길은 이제 길이 아니었다. 이제 산행 리더를 시키지 말라고 하였는데 몇 달 후 간월산 야간 등산을 다시 안내하였다. 여기서도 아주 쉬운 길, 눈을 감고도 갈수 있는 길로 30명이 올라갔는데 정상 부근에서 갑자가 안개가 밀려와 2-3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방향감각을 가질 수 없었다. 자주 온 곳이고 쉬운 코스인데도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하고 어려워 졌다. 그래서 모두 모아놓고 잠시 있으니 안개가 조금 걷힌 사이로 불빛이 보였다. 그 순간 길을 바로 찾아 내려왔지만 지금 생각해도 꼭 귀신에 흘린 기분이었다. 안개 속에서 헤매다 내려와 가지고 온 음식 한 가지 씩을 풀어놓으니 훌륭한 뷔페가 되었다. 커피향기는 밤하늘에 퍼지고 고생한 산 친구들의 아름다운 눈빛이 별보다 총총한 밤이었다. 아이구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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