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우리나라에 달러가 귀해 외국에 나가려면 어떤 목적으로 나가는지를 따져보고 관련기관에서 추천을 해 주어야 했다. 당시 해외 등반은 체육부나 문화공보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할 만큼 외국 나가기 힘들었다. 이후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고 외국 나가는 절차도 쉬워졌을 때 나도 외국의 산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먼저 일찌감치 백두산에 가보고 중국의 황산을 좋아하여 자주 다녔다. 두 번째 중국의 황산에 갔을 때 지금은 등산코스가 만들어 져있었지만 서해대협곡은 공사 중이라 아무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가이드는 백운정에서 쉬게 하고 몇 명이서 서해 대협곡을 등반하였고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을 맛보게 되었다. 안개가 자욱하여 5미터 앞이 보이지 않다가 그 안개가 물러나니 그림과 같은 정경이 펼쳐졌다. 망망대해에 간간이 섬이 떠있는 듯 구름위에 산이 떠오르고, 절벽 위 낙락장송이 휘청하고, 구름이 흐르는 곳에 계곡은 끝없이 깊고 숨을 쉴 수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한 시간쯤 카메라 셔트만 눌렀다. 이후 이 경치를 다시 보기 위해 황산을 여섯 번이나 더 갔지만 그때처럼 멋있는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사진을 찍는 나는 항상 짐 때문에 고생을 하고 짐을 줄이기 위하여 돈을 쓰곤 하였다. 1975년 스물다섯 살 때 선배 둘과 적설기 한라산 등반을 하였다. 눈이 엄청 내려 겨우 관음사까지 밥 한 그릇 먹고 개마등 코스로 하여 한라산을 오르는데 적설량은 많고 짐은 무겁고 쉴 곳은 마땅치 않고 아주 혼이 났다. 용진각 대피소에서 잠자기로 하였는데 아예 용진각 대피소가 눈에 파묻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설 사면에서 미끄러져 50미터쯤 미끄러져 내려갔는데 다시 올라오는데 만 두 시간이 걸렸다. 할 수없이 다시 하산하든 중 앞에 가든 키 작은 선배가 넘어 졌는데 그 위로 지고 있는 짐이 덮쳐 머리와 어깨까지 눈에 파묻혀 다리만 두개 바둥바둥거렸다. 얼른 짐을 들어내고 무우 뽑듯 사람도 빼 내었지만 웃음을 참을 수없었다. 그 선배는 혼이 나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우리는 하얀 떡에 젓가락 두개 꽂은 듯 한 그 선배의 모습을 생각하고 하산 길 내내 키득키득 웃었다. 그 때 짐은 비행기에서 요금을 더 내어야 할 정도의 무게였는데 관음사입구 벤치에 짐을 내려놓고 돌아서다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아 지겨운 짐... 나의 카메라...
몇 년 전 경북산악연맹 산악구조대 백두산 동계 훈련등반에 참석하였는데 그때도 짐이 많아 별도의 색에 넣어 허리에 슬링으로 묶어 끌고 갔다. 백두산 천지 바로 옆에서 야영하였는데 평균기온이 영하 30도이고 밤에는 좀 더 낮았다. 1리터짜리 비닐 팩에 든 물이 얼어버려 칼로 비닐 팩을 오려내어 얼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여자 대원들은 밤에 화장실가기가 무서워 아예 물이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신발을 침낭 안에 넣어 안고 잠을 자고 눈썹에 성애가 생기고 입김이 얼어 코끝을 베이는 추위에도 나는 사진을 찍는다고 얼어붙은 천지를 횡단하였다. 한 겨울의 백두산은 기후가 좋아야 입산이 가능하고 기후가 좋은 날이 좀 드물지만 중국은 이곳에 스키장을 개설하여 눈길도 좀 제설하고 하여 이젠 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해 여름에도 백두산을 종주 등산하였는데 마치고 이곳에서 온천을 하였는데 중국인 몇 명이 사워 후 때를 밀더니 씻지도 않고 탕에 들어오는 바람에 탕에 있던 우리는 혼비백산하여 다 나왔다. 목욕도 해 본 사람이 해 보는 거지......
' 삶의 질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남한강에서 (0) | 2008.11.07 |
---|---|
[스크랩] 풀잎 그리고 구름/나의 등산 이야기[15 ] (0) | 2008.07.31 |
[스크랩] 풀잎 그리고 구름/나의 등산 이야기[13] (0) | 2008.07.31 |
[스크랩] 풀잎 그리고 구름/ 나의 등산 이야기[12] (0) | 2008.07.31 |
[스크랩] 풀잎 그리고 구름/나의 등산 이야기[11] (0) | 2008.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