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우리 산악회에 김 XX라는 회원이 있었는데 이 후배는 등산 기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손가락으로 하는 엎드려 팔굽혀 펴기, 한 손으로 턱걸이 등 체력은 물론이고 암벽, 빙벽, 알파인스키까지 심지어는 말 펀치와 실제 싸움 실력까지 또 여드름이 넉넉하게 난 얼굴에 넉살까지 보태니 가히 산에서는 당할 자가 없었다. 늦가을비가 추적거리는 탠트 안에서도 이 후배만 있으면 3시간은 배를 잡고 웃을 정도로 항상 유쾌하고 서글서글한 멋쟁이인데 문제는 산만 너무 좋아하고 경제력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그해 겨울 빙폭 훈련을 한 설악산 토왕성 폭포에서 슬립하여 30미터쯤 추락하였는데 추락하면서 픽켈에 얼굴을 다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부산대학교 교수들이 회원에 상당수 있어 급히 부산으로 후송하여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하여 큰 수술을 하고는 만화처럼 재미있는 얼굴이 더 추상화처럼 되어버려도 “걱정 마세요 담배 피워 보니 연기가 안 새드라구요” 하며 마냥 즐겁게 웃고 떠들곤 하여 병문안 온 사람들이 잔칫집에 왔는가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 후배는 산에 대한 열정을 견디지 못하고 네팔에 있는 셀파스쿨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고 다시 우리나라에 왔는데 현지 아가씨에게 돈을 빌리곤 갚지 못해 난처해하다 가져온 장비를 일부 처분하기로 하였다. 나는 당시 그가 가져온 장비 중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한 [고어택스] 일인용 텐트를 하나 구입하였다. 당시 고어택스는 산악인들 사이에 말로만 전해오던 신 발명품으로 그 중에서도 일인용 텐트는 여름 비박에서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귀족등산 명품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아마 25만원 쯤에 구입하였는데 그때 내가 살던 집을 300만원 주고 샀으니까 지금 가치는 아마 오백만원 정도는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비싼 1인용 텐트를 가지고 그해 초가을 등산을 갔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텐트를 치고 자는데 웬걸 밤에 추워서 아주 혼이 났다. 원래 더위에는 강하고 추위에는 약한 체질인데 바람이 모기장처럼 들어오는 텐트에서 자니 한여름에도 오리털 이불 덮고 자던 내가 완전 동계 등산간 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할 수없이 그 텐트와 신발을 바꾸었다. 이태리제 [도로미테]라는 상표의 신발인데 더없이 편하고 모양도 아름다워 오래 동안 신었는데 겨울에는 듀핑 처리, 여름에는 그늘에서 말리고, 속에 신문지 넣어 습도 유지하는 등 워낙 아껴 신어 아직도 새 것 같다. 뒤에 이태리 여행 중 도로미테 지역을 구경하였는데 등산화처럼 아름다운 산악 지방이었다.
처음 등산을 시작했을 때 일요일 마다 산에 갔는데 마땅한 신발이 없었다. 사람들은 군화를 많이 신었는데 겨울에 미끄러웠고 월남전부터 정글화를 신고 다닌 사람도 많았고 영국 군인신발도 인기가 있었다. 동양고무에서 국산 등산화가 나왔는데 육 개월이면 닳아버려 보너스로 신발을 사기로 하고 동료 3명이 남포동 랙신턴이라는 양화점에서 등산화를 맞추어 신었는데 방수가 시원찮아 비가 오거나 적설기 등산을 하면 신발 무게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구한 도로미테 신발은 트랙스타라는 아주 훌륭한 국산 신발이 나오기 까지 오래 동안 나의 산행 길 반려가 되었다.
어찌 보면 산사랑은 신발사랑 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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