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마사진 [낯선]

제주 올레길 여행

빛의 도둑 2008. 11. 16. 18:22

 

 

사람이 세상에 길을 내기 전에는 온 세상이 길이었다.

지난 제주 올레여행의 잔상이 전보처럼 다가 와 뭘 하느냐고 보챈다.

그 하늘, 그 바다를 잊을 수 없어 열병을 앓고 있던 나는 애인이 면회 온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가는 길은 배, 오는 길은 저가항공기 나머지는 없다. 그냥 되는대로 하는 거다. 그게 올레답다.

경상대학교에서 젊은이들에게 뭔가 한 이야기 해달라고 특강신청을 해 왔다. 그러나 애라 모르겠다. 떠나고 보자 다녀와서 고민답게 고민하고 강의답게 강의하자. 이미 넋은 제주 길을 걷고 있는데 저지르고 보는 수밖에 없다.

커피와 음악의 달인 부부와 동행이다.

멋을 아는 사람들 그래서 멋진 사람들. 줄 곳 나의 모델이 되어주었다.

5코스부터 시작이다. 내일은 6코스다 그리고 나머지는 또 어느 날 바람이 불면 걷게 될 것이다.

 

새벽 배에서 내려 미풍식당의 해장국

점심은 용왕 난드로식당의 보말수제비

저녁은 제주 토종 흑돼지 오겹살

또 점심은 우리어멍식당의 성게 보말 메밀칼국수

모두 절묘한 맛과 착한 가격이다.

 

 

 박수덕, 물질, 조슨다리, 박수기정, 볼레낭길, 황개천, 화순

산방산, 설큼바당, 사계포구, 송악산, 하모

아름다운 이름만큼 아름다운 길, 산은 멀고 바다는 곁이다.

 

제주의 문은 짐승의 출입을 막기 위해 돌문 위에 긴 나무를 걸쳤다.

그 나무가 하나면 옆집에 놀러 간 것이고, 둘이면 시장 등 좀 먼 곳에 간 것이고, 셋이면 오늘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고, 넷이면 이 집은 과부가 살고 있으니 .... 어쩌라는 것인가? 오라는 건가? 오지 말라는 건가?

말이 무지 빠른 충청도에서 이사 온지 30년 됐다는 택시기사는 할머니가 세 명이라나...

예전에는 육지에서 제주로 새댁이 이사 오면 일 못한다고 구박이 심했고,

이름 짓기 전 애기는 남자는 개똥이로 여자는 순댁이로 공통으로 불려졌다.

사람이 그리운가? 천성인가? 춥다는데도 혼자 열이 나서 연신 창문을 열어 제친다.

 

사람이 그리워지면 용감해 진다.

여행이 주는 선물 중에 쉽게 사람에게 다가 갈 수 없는 낯가림을 없애주는 것이 가장 큰 것 같다.

물레낭길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문어 조각과 술뱅어 회를 사먹었다. 오토바이 모자에 담아둔 밀감 세치의 혀를 놀려 입을 즐겁게 했다. 거금 만원!! 지출이 막심해도 아름다운 부부가 동행이니 이 정도는 폼을 잡아야지....

낚시하는 아저씨에게 찾아가 밀감을 얻어먹다. 굵은 것은 맛이 없다며 이파리가 붙어있는 작고 싱싱한 것을 준다. 아! 이렇게 맛있는 밀감이 있었던가?

칼국수 집 동맥 수술한 40년 물질의 할머니 딸 다섯에 손자 15명, 인심이 넘치고 넘쳐 돈 떨어 졌다고 하니 밀감 밭 일꾼으로 소개해 주신단다. 일당 7만원... 그냥 퍼져 앉아 제주도 사람 되어 버릴까 고민 잠시 한다.

그리고도 배고프다고 밥을 두 그릇이나 그냥 주신다. 반 그릇도 못 먹었다. 칼국수가 너무 맛있고 양이 많아...

 

 

 

 

 

 

 

 

화순해수욕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걱정스러운지 자세히 가르쳐 주시는 것 같은데 한마다도 못 알아듣는 순도 100% 제주도 말이었다. 그냥 인사만 드린다. 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의사가 소통되지 않는 언어가 실제로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기하다. 제주사람들이 일본 통치 시대 오사카에 많이 가서 그곳에는 오리지날 제주 방언이 보존되어 있다는데....

 

온 섬에 소국이 만개했고 길목마다 소국이 진한 향기로 맞이해 준다.

쉬지 않고 밀려오는 바다 소리와, 강렬한 태양, 그리고 향기, 그 향기를 실어오는 바람, 제주는 엄연히 살아있다.

 

아침 용머리해안에서 미국사진 잡지에서나 볼법한 선명하고 황홀한 빛을 본다. 앞에 가는 일행의 모습이 그냥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모래사장에서는 그림자가 길었고 바위벽에서는 색깔의 조화가 만만치 아니하다. 바다는 진한 남색이고 파도의 흔적이 갈치의 등지느러미처럼 선명하다. 형제 섬 쪽으로 파도의 비늘이 싱싱하다. 곳곳에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둘러섰고 굵은 돌 깔아 만든 길을 밟기에 미안할 정도로 일하신 분들의 노고가 새삼스럽고 또 이렇게 예술적인 길을 만들어 준 혜안에 감사드린다.

 

사계포구를 지닐 즈음 도회에서 중독된 커피가 너무 그리웠다.

그때 신화처럼 나타난 카페 간판 그러나 영업을 위한 공사 중이었다.

용감한 우리 일행이 말문을 트고 디자이너 출신에 혼자서 몇 개월째 공사 중인 젊은 예비 사장으로 부터 결국 핸드드립한 케냐커피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사장도 일 하는 도중에 만나 맛만 보고 한 번에 케냐를 알아맞히는 커피쟁이를 만나 하고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쳤으니 비슷하게 격이 맞았고, 이 절묘한 기회와 행운 나 같은 올레꾼이 있을까?

 

 

 

 

 

높은 벼랑에 염소가 한가하고 바다는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닷가 길만 실하게 걸었다. 소나무 숲에 들어가 쉬면서 밀감을 먹는다.

세 명이 천원이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밀감, 그도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아니고 시비 붙어 한 두 개 더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것도 즐거움이다.

송악산 분화구 주변을 돌아 국화가 한창이다. 마라도와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말을 방목한 목장이 한가롭다.

자전거 끌고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 반갑게 인사하면서 혼자 속으로 고소해 하였다.

 

돌아오면 다시 열병을 앓을 것 같은 예감에 쌓인다.

이 바다, 이 바람, 꽃잎, 갈대, 푸른색 페인트, 역광으로 반짝이는 비늘,

사람들의 얼굴과 손길, 잘 만들어진 올레길, 그리고 나의 사진. 사진들.....

 

말이 그냥 뛰놀고, 조약돌 하나에도 전설이 입혔고 저 바다의 소나무, 일상을 평온하게 쉬게 해줄 의자들 벤치들, 모래사장에 누워 오수를 즐기는 외국인들, 석양 속에 서로 손잡은 그림 같은 연인들, 부서지는 파도 멀리 보이던 오징어 고깃배의 불빛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제주를 어찌 그냥 이별할 수 있을까?

 

특히나 가을타는 남자인 내가.....

 

올레에서는 가슴에 묻을 것이 참 많다.

소리로 내 뱉을 것도 많다.

눈동자 속에 깊이 숨길 것도 많다.

상념은 날개를 타고

자유라는 것, 낭만이라는 것, 객기라는 것

신발 속에서 저들끼리 부딪치는 발가락처럼

돌멩이처럼 이리저리 딩구르고 나동그라져도

바다는 그냥 웃는다.

 

300년쯤 살아 온 할아버지처럼 허허 웃는다.

 

옆에서 밤낮이 바뀐 등대도 따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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