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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칠월의 향기-백두산종주-

빛의 도둑 2006. 9. 26. 20:58
 

칠월의 향기

-백두산에서-


2005,7,14일 이도백하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서파 산문에 있는 숙소에서 새벽1시에 모닝콜이다. 이 시각에 일어나는 것은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이곳은 새벽3시면 훤히 밝아온다. 북반구 위쪽이기 때문이다. 2시에 집합하여 2시30분 출발하였다.

 


서파지구 백두산 산문


 

지독한 운무이다. 도무지 운전이 불가능 한 상황이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없으니까 그냥 중앙선만 2-3미터 정도 보이는 것을 보고 달린다.  이 시간에 백두산 5호 경계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것도 이 지독한 운무 속에서....

40분쯤 걸려 서파 주차장에서 하차, 렌튼으로 더듬어 계단 길을 40분정도 오르니, 형식적으로 철책이 쳐 져있고 조그만 네모 돌에 앞면은 중국 뒷면은 조선이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5호 경계비이다. 전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5호 경계비 앞쪽은 중국 뒷쪽은 조선으로 적혀 있다


 

 안개와 비가 뿌려 일출은 보기 틀렸다. 조금 기다리다 그냥 산행을 시작한다. 마천우까지 1시간 정도 걸었다 길섶에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야생 고산화들이 안개에 젖어 청초롬히 피어있다. 다시 내리막 그리고 오르막 2664m의 청석봉에서 숨을 몰아 쉰다

 


마천루


 

계속 안개 속을 운행하였다 무거운 짐에 우의를 입고 가뿐숨을 내어 쉬고 그저 날씨가 개이기를 기원하였다.

 


야생화


 

아주 밝은 모습의 대원들  힘들어 하면 부축해 주고 어려워하면 어디선가 달려와 도와주는 총무님, 아름다운 마음으로 ,봉사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꿈과 우정의 유쾌한 원드우먼들

모두들  기도가 통했는지 잠깐 천지가 눈속임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갑자기 하늘이 훤히 밝아지더니 쏴하고 안개가 밀려가고,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리더니 갑자기 천지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그만 이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불고 안개가 다시 온 산을 뒤덮어 버렸다.

 


청석봉



잠깐 비친 천지

그 기쁨도 잠깐 한허 계곡으로 지루한 내리막을 걸었다 중간 중간에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 있다 그 잔설에 도시락을 펼치고 꺼칠한 아침 식사를 했다. 시계는 7시를 조금 지났다.

 


송강하



한허계곡

송강하의 발원지인 이곳 계곡은 깊고 심오하다. 주변에는 온갖 꽃들이 분분하고 물살은 차고강하게 흐른다 골짜기 는 깊고 산은 험준하다. 그리고 넓고 장엄하다. 야생이 그냥 그대로 살아 있다 마치 어제 길가에서 본 산돼지 가족과 도로에서 어슬렁 기어가는 뱀의 모습처럼. 산도 태고 적 그대로 이고 돌과 풀꽃도 그대로이다.

 


야생화



야생고산화

 

 개울 목 찬물에 손을 담그자마자 오르막이다. 계획에는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나 2시간정도 그냥 오르막만 올랐다 가끔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격려도 하고 야생화 사진도 찍으면서 그래도 다시 천지의 웅장한 모습을 기대하는 일념으로 오르고 올랐다.

 

 

 날씨는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운무는 바람에 날리고, 가끔 작은 빗방울도 비쳤다. 최고 힘든 코스인 2691m 백운봉을 돌아 2603m 녹명봉을 향한다. 이곳은 아직도 계속 암석이 함몰되고 있어 어떤 곳은 재빨리 돌아야 하고 어떤 곳은 조용히 천천히 돌아야 하는 위험한 곳이다. 마치 산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산길은 아름답다.

 


백운봉
 

 만약 날씨가 좋으면 천지를 끼고 도는 환산적인 코스이다. 잠깐 안개가 약해지고 하늘이 파란 제 얼굴을 들어 낸다. 그러나 천지는 안개 속에 쌓여있다. 여기서 한참이나 천지에 안개 걷히기를 기다렸으나 결국 볼 수가 없었다.

 


천지


 

2596m 차일봉에서 비로소 천지는 제 모습을 나타내었다. 하늘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파랗게 개이고 흰 구름 몇 개 시원스레 움직인다. 천지는 뿌연 어스름에서 차츰 밝아져 왔다. 멀리 북한의 장군봉(2749m) 을 비롯하여 비류봉,쌍무지개봉,해발봉,제비봉,와호봉,재운봉들이 줄지어 열병식을 벌이고 푸르다 못해 남색으로 빛나는 물에 그 그림자들을 드리웠다.






천상의 화원


 

11시경 하산하는 길은 환상의 화원이었다.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능선을 따라 하산하고 우리는 둔덕을 가로질러 야생화들이 장관의 꽃밭을 만든 구릉지대로 하산하였다. 희고 노랗고 보랏빛 가지가지 꽃들이 지천으로 수북하고, 이끼가 덥힌 길은 페르샤 융단처럼 폭신한데, 사방에서 꽃향기는 어우러지고 눈이 시리고, 가슴이 아리게 황홀한 정경에 그냥 넋이 빠져 버렸다.

 


능선에 선 사람들


 

1초가 흘러가는 것이 아깝고, 온 사방에 보이는 것은 감격 그 자체, 그리고 순수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이리 걸어보고 저리 걸어보고, 멀리 산 능성이를 걸어오는 일행에게 손짓도 해보고, 삼십년 이상 된 등산 이력 상 가장 감격적인 순간을 만끽하였다. 일행도 사진을 찍으랴 감탄하랴 그냥 가슴으로 느끼랴 말들을 잊었다. 감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때껏 모든 고난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신의 축복이었다. 백두산의 하늘호수 산상의 화원에서의 이벤트는 끝이 없었다. 갈 길 재촉하는 이들이 미워지고, 그냥 누워 버리고 싶은 초원에서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리고 다짐 한다. 다시 한 번 이 기쁨을 맛보겠다고....




야생 고산화


천상의 화원

달문으로 하산하는 너덜지대는 공포였다. 거의 70도정도의 경사에 마냥 흘러내리는 돌덩이, 그리고 까마득하게 500m 가 넘는 긴 직 하강 길, 3m간격을 유지하며 기다시피 내려오며 선택된 자 들에게 관람료도 혹독하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신은 환상의 정경을 보여주고는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지친 몸, 힘 빠진 다리, 고픈 배, 모두 다 잊고 신경은 오직 오감에 의지하여 조심조심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려 하산하였다. 예순이 넘은 분들이 대부분인 산악회원들이 줄지어 앉아 안전하게 하산하는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 또 하나의 멋이다, 아름다움이다.

 


너덜지대


 

나는 이곳의 느낌들을 이날 저녁 이렇게 표현하였다.


칠월의 향기


살아온 날들이 그래도 아쉬워

운무 속을 헤메이다가

다시 걸음을 시작하다

산정에 돌비석 하나

머-언 옛이야기 속에

가슴이 아리고

오르막 위에 기다린 안개

돌 무리 구르는 능선을 지나면

안개마을은 잔치를 벌린다

꽃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필 때를 알고

스스로 혼자 핀 꽃이

더욱 자랑스럽다

바람이 성긴 곳

지난계절 잔설을 품고

하늘호수가 아미를 든다

깊이를 말하지 않고

맑음을 따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안다 그 순수를

이랑에 물결 진 작은 꽃 이파리

너덜 내리막 숨가뿜 속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눈망울들

빛나는 칠월의 향기

 



 


그리고 달문을 지나 천지 물가에서 중국제 신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였다.

35년 이상 근무에 주는 장기근속휴가 9일을 겨울 백두산에서 4일 여름 백두산에서 4일을 사용하였다. 백두산은 내 인생의 휴가 마지막 날에 환 한 얼굴로 화답해 주었다 그것은 환희의 파노라마였다. 마치 내 직장 생활이 그러했듯이...

 


장백폭포


 

수량이 불어 철철 넘치는 장백폭포의 우람한 모습을 뒤로하고 모두들 건강힌 피로감을 즐거워하며 인사하였다


잘 있거라 백두산이여

 

내 다시 오리니... 

출처 : 그림사랑 구름사랑
글쓴이 : 시지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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