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雲流水
애초 출발이 시작은 아니었다. 나를 억누르는 무게를 억지로 감당하며 현실에서 도망쳐버리고 싶다는 미지근한 생각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잠깐의 도피로써 여행을 택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아무 계획도 알려하지 않고 그저 날 위해 길 안내해주는 L사장의 이끌음에 충실히 따르기로 한 터였다.
공항은 활기에 넘친다. 저마다 조금씩 이스트에 부푼 빵처럼 마음속에 풍선 하나씩 마련하고 면세점 앞에서는 호사에 겨운 행복으로 얼굴이 달아 올랐다. 물론 어려운 출장으로 또는가족과 멀어짐으로 안따까움도 있겠지만 대부분 어딘가를 떠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이는 현상일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있어도 찌뿌듯하게 흐린 하늘처럼 마음은 무겁다. 마치 나를 감싸는 햇살이 사라지고 바람 불고 길 험한 산속에 혼자 팽개쳐 진 것 같던 일전의 기억들이 표정을 흐리게 한다. 아직은 사고의 사치이다. 현실은 아직 저기서 혼 좀 나 봐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스믈스믈 기어오르는 벌레처럼 잔상들이 신경쓰이게 한다.
구름위로 오르니 그 곳에 파란 하늘이 반갑게 얼굴을 내민다. 일순 기분이 좋아졌다. 남에게 파랑새처럼 자유로워라고 말만 하면서 한 번도 자유로운 여행을 해 본 기억이 없다. 항상 같이 간 일행에 대한 생각. 시간에 대한 생각. 경비에 대한 생각. 사진에 대한 생각으로 강박관념속에서 여행 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은 좀 틀린다 아니 틀리도록 했다.
우선 어디를 어?F게 가서 뭘 보겠다는 계획이 내 머릿속에는 없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숙소와 간사이패스 한 장으로 이 여행을 감당 할 것이다. 무얼 사 먹을지도 누굴 만날지 모른다. 그냥 배고프면 먹을것이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과 대화 할 것이고 말이 안 통하면 웃음만 씨익 나눌것이다.
오사카의 칸사이국제공항 바다를 메워 공항을 만들고 철도를 개인 자금으로 만드는 나라의 공항. 일본에서 두 번째 큰도시. 옛 도읍 쿄토와 나라가 가까운 도시 나의 부모님께서 해방전 소방서에서 일했던 도시, 아직도 제일동포가 많이 살고 우리나라 제주도 방언이 제일 잘 전래되고 보존되고 있는 도시. 벡제의 사신이, 백제의 왕손이, 백제의 학자가,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 패한 백제의 유민이 건너와 귀족의 가문을 유지한 도시
높새어 어원에 따라 민족의 이동 설, 말 馬자 어원에 따라 지명이 움직인 곳, 일본의 일본서기와 고사기등 오래된 역사책에 2주갑 인상론이라는 해괴한 역사 이론을 지금도 고집하게 된 원천지 나라와 쿄토, 일본의 국보1호인 좌상과 칠지도, 나라의 백제역, 일본의 초대천황인 응신천황에 대한 진실. 김영희의 노래하는 일본 역사 해설에 따른 고대 일본의 천황가계도는.... 고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작았던 전라도 지방과 일본에서 가장 키가 컸던 지방인 나라 지방의 고대 유골에 대한 탄소측정에 의한 연대와 그 이동은...옹관묘, 숯으로 만든 묘, 지석묘 문화등등 이런 것들은 이번에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다짐한다.
남바역 하나의 역명으로 6개의 역이 존재 하는 곳. 역은 다시 갈 수 있어도 역에 있던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다. 지금 얼굴 마주 보고 있는 사람도 시간의 역에서 만난 사람이다. 이 시간이 얼마일 지 몰라도 언젠가는 기억의 저 편에 설 것이다. 그래서 만남이 중요하고 인연을 홀대해선 안된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와 항상 더불어 있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시간 만큼의 어떤 몫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비오는 오사카 중심가. 의외롭게도 자전거의 물결이다. 비에 젖은 희색도시는 어둠에 모습을 어렴풋이 감추기 시작하고 지상보다 더 복잡한 지하통로를 이리 저리 걸어 본다. 유행의 거리 음식의 거리 넘쳐나는 사람과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신세아바시와 쥐죽은 듯 조용한 도심의 골목에서 거대한 대도시와 사람들이 숨을 쉬고 조그마한 공간들이 아쉬워 자꾸만 뭔가를 만든다. 그리고 마치 젊잖은 선비가 술 취해 망나니 짓하는 것 같은 거리 도톤보리의 고개 숙인 다소곳한 주점과 네온이 춤울 추는 환락속에 사람들이 살아간다.
60대가 됨직한 주인 내외가 운영하는 선술집. 한 여자와 두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다. 소주를 얼음에 타 먹는 여자와 맥주를 마시는 남자 그리고 일본 정종을 마시는 우리 일행 얼마지나지 않아 서툰 일본어로 인하여 한국인 임이 밝혀지고 이어 여인을 아름답다고 칭찬하며 작업 들어가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을 좋아한다는 말에 불러 본 우리 대중가요 “돌아와요 부산항” 그들은 박수치고 주인은 악수 청하고 일본 유명가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미우라 아야꼬로 했다가 ?? 작가인걸 깨우치곤 일본의 작가. 겐지 오나브로, 니쓰메 소세키, 야마자키 도요꼬, 카와바다 야스나리, 사사미 나오미, 뮤라카미 하루끼 까지 나오자 자기도 작가란다. 어쨌던 그 많은 작가 덕분에 술은 잘 마셨다.
쿄토 “철학의 길”에서 만난 상점 “風” 바람개비를 파는 곳이다. 철학의 길에 가징 잘 어울리는 상점인 것 같다. 미풍은 언제나 있고 그래서 이 상점은 존재 가치가 있다. 길은 고색창연한데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냥 산책로이다. 그러나 한 시간 가량 걸어야 할 철학의 무게에 우선 다리부터 아파지는 거리이다. 상점 풍에서 돌고있는 바람개비처럼 사람들도 그냥 이 길을 걷고 또 걷고 있다. 그 곳에는 화톳장만 한 케익 하나를 몇 천원하는 길거리 상점과 아주 고급 룸싸롱 입구처럼 꾸민 치과병원과 호숫가 오롯한 카페테리아처럼 꾸민 점 치는 집이 이웃하여 오손도손 어깨를 부딧치고 있었다.
중국은 웅대하면서 곡선적이나 일본은 수려하면서 직선적이다. 중국의 자연은 크고 깊으며 위압적이고 일본의 자연은 화려하고 오묘하다. 중국의 음식은 다양하고 푸짐하며 넘쳐나고 일본의 음식은 단출하고 싱싱하며 정갈하다. 중국의 색깔은 환하고 반짝이며 붉고 일본의 색깔은 수수하게 스며들며 깊이가 있다. 중국의 기원은 요란하게 향을 피우고 부적을 불 사르고 일본은 조용히 향을 피우고 부적을 줄에 묶어둔다. 중국은 무질서 속에 실리가 있고 일본은 질서 속에 속셈이 있다.
어디나 옥에 티는 있다. 별것도 아닌 걸 사진을 못 찍게 하거나 전자음으로 사진 찍지 마세요라고 외친다. 할아버지가 타도 자리 양보를 안하는 학생, 빨간 신호에도 길을 건너는 대부분의 젊은이, 파란불 신호에 길을 건너고 있는데도 회전하는 차량들, 좀 큰 건물은 의례히 빠친코가 자리잡고, 레프트 라이트 정도 알면 훌륭한 영어구사이고 무지무지 비싼 문방구 용품들, 9시면 문닫는 전자상가 10시면 손님 안받는 통술집 별로 춥지도 않는데 목도리에 두꺼운 외투에 추위를 타는 사람들 흠 잡힐 일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조성 우람한 궁궐 벽에 벽화가 ?C았다. 자객을 두려워해 일부러 삐꺽거리게 만든 복도를 일부러 삐꺽거리게 걸어본다. 내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놓은 해자의 깊이만큼 피 냄세가 베여오는 역사의 먼지 알갱이들.. 이 모든 것을 보석처럼 꾸며놓은 그들의 정신과 그 보석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 가는 곳 마다 출입제한이고 젊잖게 줄 쳐진 그 제어와 그래도 구석구석 들어와 앉은 찻집, 우동집 그리고 휴지하나 버려진 곳 없음이 오히려 가슴시리다.
길을 가르쳐 주기위해 묻기를 기다린 것 같은 사람들.. 지하철이 떠나기 직전까지 자기 핸드백 안에 있는 작은 지도까지 꺼내어 주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아가씨. 결국은 같은 기차를 탔는데도... 경비원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잘 모르니 그곳에 있던 경비원 4명을 불러 회의 실시, 조금후 결론을 가지고 저리로 가란다 나는 그냥 길만 물었는데... 지도가 조금 이상한 듯하여 청소하는 녀석에게 길을 물었는데 당장 청소 집어 치우고 안 뺏길려는 지도 뺏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길을 불어 보곤 절을 몇 번씩하며 길 가르쳐 준 녀석...버스 기다리는 청년에게 길을 물어 보았는데 자기가 타야 할 버스도 안타고 100미터 쯤이나 앞장 서 가면서 결국은 정확한 버스 탑승지를 가르쳐 주고야 마는 청년... 그 중 하나 두 번이나 스미마셍을 외쳐도 그냥 가버린 돌연변이 미니스카트 일본 가시나 단 하나...
문화는 누가 알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 새 단장하여 금빛으로 빛났지만 사람들이 금빛 보러 왔겠는가?. 잎세에 부는 바람과, 그 바람속에 뭍힌 세월의 노래와, 고색 창연한 탑들의 모습에서 살아 온 일들을 보고 살아 갈 일들을 생각하기 위함이다. 모든 돌과 나무들이 나를 그냥 좀 놔 둬라고 울부 짓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주에서 들었던 비명을 오사카 성에서 일본말로 들었다. 저 혼돈의 상술이 몇푼의 돈을 위해 문화를 등쳐먹는 소리와, 개발의 미명아래 부서지는 수 많은 흔적들 누구를 위해 치장하려 하는가?
인력거를 끌던 청년의 기다란 다리와, 마치 경치 사진을 건 것 같은 창문을 배경으로 사진 모델이 되어 주던 점원 아가씨, 스시 두 쟁반에 흔쾌히 사진찍기를 허락해준 칼잽이 아저씨, 일본 인형을 파는 진짜 일본인 같은 젊은이, 젊음을 맘껏 누리며 무리져 가던 학생들, 무언가를 간절히 빌기 위해 청수사 나무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 회전 초밥집에서 스시 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맛을 음미하던 사람들, 팥과자를 만들던 아주머니, JR쿄토역에서 본 사람들 이 사람들로 인하여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재즈바에서 쏘아 본 다트의 화살처럼 나를 떠난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 상념의 끝은 나에게서 결론을 요구한다. 쿄도에 남기고 온 발자국처럼 지난 시간은 추억속에서 존재한다. 그 시간들이 황홀했던지 아님 이쉬웠던지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애초 출발이 시작이 아니었다. 이 여행을 마무리 하는 이 시점이 시작임을 깨닫기 까지 소요된 투자는 그리 아까운게 아니었다.
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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