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곡

[스크랩] 풀잎 그리고 구름/나의 등산 이야기 [1]

빛의 도둑 2008. 7. 31. 21:51
 

풀잎 그리고 구름[1]

-나의 등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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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스무 살이 되던 해 마이산에 갔다. 그 때는 등산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우리들의 복장이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에 띄기 마련이었다. 륙삭이라고 하는 큰 돗베 배낭에 군용 천막 한 동과 군용담요 그리고 판쵸 우의, 항고라고 부르는 밥통, 그리고 석유램프와 석유통을 들고 해군 바지를 종 걷어 올려 지금 축구 선수들이 쓰는 스타킹을 신고 머리에는 티롤 모자를 쓰고 나섰으니 쳐다 볼만도 했다. 대전까지 기차타고 가서 그곳에서 하루에 세 번 있는 진안 행 버스를 타고 다시 마이산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지금이면 자가용으로 3-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을  아침 6시에 출발하여 밤 8시에 도착하였으니 14시간 걸린 셈이다.

마이산 아래 저수지 둑에 텐트를 치고 나무를 주워와 불을 피우고 굵은 가지에 항고를 걸고 밥을 해 먹었다.  처음하는 야영에 신은 났으나 밥이 삼층밥이 되어 반은 누룽지고 나머지의 반은 아예 숯이고 그래도 물에 불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인근 마을에 내려가 인사하고 된장과 풋고추를 얻어먹었다. 당시 젊은이들 간에는 무전여행이 성행하여 시골 밭에서 농작물을 그냥 가져가서 혼이 나곤 하였으나 가서 인사하고 이야기 하면 누구나 가져가라고 하였고 간혹 막걸리도 얻어 먹을 수 있었으니 지금에 비하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밤은 깊어가고 저수지에 마이산의 모습이 달빛에 비쳐 환상적인 풍광을 그리는데 멀리서 개는 간혹 짖고, 간혹 저수지에서 고기는 튀어 오르고, 바람은 소슬하여 살짝 한기가 스미고, 달은 제 멋에 달리는데 수수하게 반가웠다. 원래 저수지의 둑에서는 야영을 하면 안되는데 그때는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 이야기 하는 이도 없었다.

다음 날 암 마이산을 기어이 오르고 만나는 이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가끔은 펜팔하자고 주소도 교환하고 무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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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는 아직 버너가 보급되지 않아 그냥 나뭇가지를 주워 밥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알콜버너가 나와 훨씬 편리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보통 야영을 하게 되면 군용텐트와 폴대 그리고 팩만 해도 한사람 짐은 느끈하였고 바닥에 까는 판쵸 우의와 담요만 해도 짐이 엄청났는데 불행하게 비라도 오면 그 짐에 모두 물기가 스며들어 그냥 젖은 옷에 배로 불어난 짐의 무게에 등과 어깨가 혹사당했으니 등이나 어깨도 주인을 잘 만나야 할 일이다.

그때는 등산장비를 파는 것도 많지 않고 주로 선배들 것 얻어서 썼는데 선배들이 얼마나 엄하고 무서웠는지 얻어도 관리 잘못하면 혼나는 시기였으니 참 지금은 좋은 시절이긴 해도 그때의 그 멋이나 풍류가 그립다.

나의 이십대 시절은 바람같이 다니면서 보냈다. 방랑벽이 베이기 시작하는 시절, 같이 어울리던 선배와 동료 그리고 새로 사귀기 시작 한 산 친구들이 너무나 정겹고 멋있고 우리 나라 우리 땅이 이리도 아름다운가 하며 부지런히 다니던 시기였다.

출처 : 그림사랑 구름사랑
글쓴이 : 시지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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