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곡

[스크랩] 풀잎 그리고 구름/나의 등산 이야기[3]

빛의 도둑 2008. 7. 31. 21:58
 

풀잎 그리고 구름[3]

-나의 등산 이야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일출 같은 인생을 사나요? 아님 일몰 같은 인생을 사나요?


산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따뜻한 침낭을 박차고 나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온 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그냥 이곳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야영이 매우 어렵지만 옛날 특히 지리산 장터목산장 부근에서 야영하면 환상적인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짐도 무겁고 고되지만 야영을 즐겁게 하려면 음식도 잘해야 하고 같이 가는 멤버로 좋아야 한다. 언젠가 지리산 장터목에서 야영할 때 조금 떨어진 텐트에서 누가 퉁소를 불렀는데 지금도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이 깊었다. 그래서 나도 퉁소를 배워 볼까 하다가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려 포기한 적이 있었다.


선배들과 야영을 하면 좋은 점도 많지만 한 번씩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소백산 정상에서 야영을 하다가 술이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서열이 가장 낮은 K와 B가 아래 동네로 술을 사러 가게 되었는데 밤 깊은 시간에 술을 파느냐 도 문제지만 길도 만만치 않았다. 그레도 하늘같은 선배의 지시니 어쩔 수 없이 내려가 소주 됫병 세 개를 사서 올라오는데 천하의 대장부들도 소백산 깊은 산을 한 밤중에 오르면서 어찌 무섭지 않을까? 춥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둘이서 소주 한 되를 그냥 마셔 버렸다. 그리고 올라오다 한 병은 깨어 버리고 내려간 지 4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와서는 술이 취해 “형님 한 병은 깨고 한 병은 마시고 한 병 가져 왔습니다.” 이런 후배 지금은 어디 없나?


한라산에 알파인 스키훈련을 간 적이 있었다. 8명의 남자들이 밤에 마실 술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첫날 눈밭에 나무 가지을 얽어 아래쪽에는 감자를 묻고 위에는 장작을 쌓아 캠프파이어를 즐기며 술을 먹었다. 등은 시리고 앞쪽은 뜨겁고 술은 취하지도 않고 끝없이 술 술 넘어갔다. 당시 가징 독한 술이라는 드라이진 수십 병을 가져갔는데도 하루 지나고 나니 다음날 먹을 양도 모자랐다. 그렇다고 긴긴 겨울밤에 따로 할 일도 없고 그냥 술 마시고 노래하고 이야기 하고 놀아야 할 판인데 술이 떨어지면 낭패였다. 그래서 후배 한 녀석이 술을 사러 가게 되었는데 한라산 사제비동산 야영지에서 겨울 적설기 한라산을 내려가 술을 사 가지고 다시 오는데 꼬빡 1박2일이 걸렸다. 그래도 불평한마디 없이 다녀온 후배나 그렇게 보내는 선배나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그때 한라산 스키훈련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또 그 일이 제법 긴 술심부름의 역사에 속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산에서 야영할 때 캠프파이어는 당연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또 이 만큼 운치가 있는 것도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두운 밤에 환히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마음이 부자가 된다. 바닥에 익어가는 감자나 군밤, 그리고 불꽃, 바람 따라 다니며 미남을 좋아한다는 매캐한 연기, 절로 나오는 노래, 그곳에 술 한 잔 기울이면 모두가 친구고 모두가 정인이 된다. 한 이십년 전 쯤 지리산 중산리에서 등산을 마치고 민박을 하며 밤새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민박집 주인이 버스 앞에 드러누워 일어나지를 않았다. 나무를 다시 해놓고 가라는 것이다. 돈도 필요 없고 지금은 나무 파는데도 없으니 어제 저녁 불태워버린 양만큼 해 놓고 가야 이번 겨울을 날 수 있단다.

참 오랫동안 빌었다.  ㅋ ㅋ 그래도 재미있었다.

출처 : 그림사랑 구름사랑
글쓴이 : 시지프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