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그리고 구름[2]
-나의 등산 이야기-
예전에 내가 소속해 있던 산악회에 신XX라는 분이 계셨는데 당시 산악회의 이사로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신 이사님 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제 몇 십 년이 지나도 그냥 호칭이 신 이사가 되어 지금도 백발이 성성한 그 분을 만나면 그냥 신 이사님 하고 부른다. 그러면 “어이 이젠 좀 올려주라” 하고 웃으신다. 반면 그때 어른들은 나이 차이가 많은 신 이사를 신 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신 분들은 신 군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그 분은 “젠장 결혼 전부터 신 군이더니 이젠 손자가 있는데도 신 군이 뭐야? 신 군이!” 그 분들에겐 시간은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 남아있을 뿐이다.
신 이사에겐 아들이 있었는데 자주 데리고 산에 왔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우리는 요 녀석을 데리고 장난을 많이 쳤다. 그 중 하나가 물건 이름을 엉터리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즉 구름은 [번개], 숟가락은 [수건포] 여자는 [음식] 바나는 {코펠] 기차는 [전차] 버스는 [택시]등등 거의 대부분의 단어를 엉터리로 가르쳤다. 그런 후 신 이사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학교를 보내려니 뭐가 뒤죽박죽이 되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 녀석 요즈음은 결혼 하여 아들도 하나있고 아버지 모시고 골프장에 다니는 효자로 자랐다. 암 누가 가르쳤는데....
1975년 일이다. 해방 삼십 년 기념식을 지리산 노고단에서 거행하기로 하고 본회와 지부에서 모두 각자의 코스로 산행을 하여 지리산 노고단에 모였다. 우리 부산지부는 중산리에서 시작하여 종주를 하고 노고단에 야영을 하였다. 당시 부산지부 회장이신 신업제회장님은 79세였는데 부산은행에 근무하는 아들도 같이 동행을 하여 줄 곳 나와 같이 산행 하였다. 야영지에서 신 회장 아들은 유난히도 젊어 보여 누구도 결혼 하였다고 믿지 아니하고 나이를 속였다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참다못한 신 회장 아들은 “ 아니 아버지 나이가 79세인데 제가 몇 살이면 속이 시원 하시겠습니까?” 라고 하자 모두들 속으로 계산을 해 보곤 조용해졌다. 정말 몇 살이면 속이 시원했을까 아버지가 79세인데...
노고단에서 모여 전야제를 하던 중 당시 80세의 나이에 본회 회장이던 한글학자 이숭녕박사와 우리 신업제 회장간의 대화는 참 선 문답 같은 분위기였다.
“형님 별고 무양하셨습니까?”
“자네도 잘 계셨는가?”
“형님 은 아직 머리에 힘이 살았구려.”
“글쎄 색깔만 뜨물 같아졌네. 자넨 그 머리 다 어쨌나?”
“저는 별로 쓸데도 없고 안에 든 것도 이젠 낡아 그냥 버렸습니다.”
79세의 노인이 저렇게도 한 살 위인 80세 노인에게 공손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많은 시간과 많은 사연을 정을 담아 조용히 풀어 이야기 하시곤 당시 유명한 지리산 털보가 갓 볶아 스위스 기계로 갈아 낸 커피를 마시면서 신선처럼 유유자적하게 대화하셨다.
이후 내가 사석에서 여쭈어 봤다. “회장님 술은 안 드셨습니까?” “술? 예전에는 많이 마셨지 맥주는 한 상자쯤 마셨지.” “그 때가 언제 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해방 3-4년 전쯤이지 아마...” 맙소사 말을 말아야지 나는 태어나기도 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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