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곡

[스크랩] 풀잎 그리고 구름/나의 등산 이야기[5]

빛의 도둑 2008. 7. 31. 22:02
 

풀잎 그리고 구름[5]

-나의 등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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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참으로 복잡해지는 때가 있다.  웬일인지 요즈음은 신년 첫 날을 천왕봉에서 보낸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그 겨울의 산이 서면 지하철역처럼 되어 버렸다. 옛 날 교통이 불편하고 자가용이 별로 없던 시절 전세 버스로 일년에 한두 번 동계 지리산을 다니곤 하였다. 특히 구정이나 삼일절이 연휴가 되면 중산리는 시장 바닥처럼 복잡했었다.  직장 산악회에서 제법 많은 인원을 데리고 지리산에 갔는데 나와 또 한 명이 텐트 여섯 동을 담당하였다. 중산리에서 내려 다른 사람들이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동안 우리 둘은 미리 텐트를 치기 위하여 먼저 산행을 하였다. 사람들이 많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막영지가 나쁠 뿐 만 아니라 물과의 거리도 멀어 고생을 하게 된다. 칼바위를 조금 지나 법천폭포 가는 길 초입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 6동을 다 치고 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일행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여길 비워두고 내려가기도 그렇고, 어디서 술 한 잔 먹고 천천히 오나 보다 하고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짐을 텐트만 가져온 우리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 물만 한두 잔 마시고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그 밤을 그냥 보내었다. 덕분에 일인 당 3채씩 집을 가지긴 했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법계사로 텐트 6동을 짊어지고 오르는데 배가 고파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중간에 잠시 쉬는 사이 누가 참외를 칼로 껍질 벗겨서 먹는데 유난히도 참외 껍질이 두꺼워 그래도 체면에 달라 소리는 못하고 목에 침이 꼴깍... 법계사에서 일행을 만났더니 대뜸 혼만 낸다. 20명이 잘 곳이 없어 아주 혼이 났다고... 누가 내미는 빵 한 조각 !!! 그것은 그 때까지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애고 부끄러워...


지금의 적십자 대피소가 법계사 대피소로 불리던 시절, 우리 팀 40명이 겨울 지리산에 올랐다. 법계사 대피소에는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들어 차 겨우 임시로 비닐 둘러친 두 평정도 방 하나를 구했다. 그러나 인원은 40명 3중으로 눕히고도 사람이 남아 다른 방에 사람 팔러 다녔다.

똑! 똑! “누구요?” “ 여기 여자 한 두 명만 재웁시다” “ 우리도 여유가 없어요, 그리고 돈도 없수다 히! 히! ” 귀하게 자란 우리 직원들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도 똑 똑 하고 다니다 남은 사람은 부엌아궁이 옆에서 앉아서 자고 나니 아침에 그 몰골이 광부 뺨칠 정도다. 또 좀 등산깨나 한다고 해 비박준비 하여 큰 바위 아래서 자고 온 사람들은 아침 해가 중천에 오를 때 까지도 해동이 덜 되어 뜨거운 김치 국을 훟 훌 마시곤 콧물 주루룩 하곤 헤헤하고 웃는다. 고생은 끝날 때는 즐거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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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등산인구가 늘어나 좋은 계절에는 오히려 산에 오르기 싫다. 얼마 전 설악산 오세암과 봉정암에서 몇 천 명이 자고 갔다는 날 공룡능선에서 사람이 추락하여 죽었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이 밀려 119 구조대원이 올 때까지 주검 곁으로 사람들이 지나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산에 가는 사람이 많은 나라이다. 지난겨울 일본 중앙알프스에 갔을 때 구경만 하고 등산은 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기억이 난다. 또 지금은 야영도 안 되고 산장도 예약해야 되지만 산장 마루에 옆으로 세워서 그대로 칼잠을 자게 하던 그 때의 산장, 그 때의 발 고린내가 오히려 그립다.

출처 : 그림사랑 구름사랑
글쓴이 : 시지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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