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은 참 아름다운 산이다. 작년겨울 설악산에서 태국 여학생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설악의 그 산 경치와 처음 보는 눈경치에 완전히 넋이 나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버스에 내려서는 잠시 경악 그리고 이어진 함성... 우리가 자주 보는 경치지만 그녀들에겐 꿈에서도 상상 못하던 경치이리라.
1982년 직장 산악회에서 연휴를 이용하여 설악산을 최 단시간에 갈 수 있는 코스로 올랐다. 한게령에서 1376 고지 그리고 중청과 대청 오색으로 하산 정말 쉽고 간단한 코스 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 항상 이런 코스로 밖에 갈 수없다 . 그 땐 이미 남들을 안내하던 시기라 내가 즐길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무거운 카메라를 가지고 갔는데도 안개가 많아 전혀 경치를 볼 수도 없었고 앞 사람 엉덩이만 쳐다보다가 산행이 끝나 버렸다. 그저 땀 흘린 기억밖에 너무도 허전하고 억울하여 다음 주일 바로 휴가를 내고 신이사와 둘이서 종주 등산을 하기로 하였다. 내가 가장 아끼지만 무거워서 엄두를 못 내던 핫셀브라드와 니콘 카메라를 넣고 텐트와 침낭을 넣고 며칠분의 식량을 넣고 절로 신이 났다. 신이사는 선배님이지만 나의 사진을 도와주기 위하여 많은 짐을 져 주셨고 둘이서 설악에 파묻혀 먹던 닭 내장 볶음에 위스키 한잔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침 날도 무척 좋아 코끝이 쏴하게 느껴지는 초가을을 맑은 바람과 밤이 이슥하도록 파랗게 반짝이는 하늘에 혼자 아름다운 초승달이 애처로워 잠들기 아까운 밤을 흔적 없이 뒤채다 제소리에 깨고 다시 잠들고 산은 그렇게 우리를 안아 주었다. 중청과 대청을 지나 화채능선에 접어드니 저만치 오는 가을과 저만치 가는 여름이 작별식을 하고 도열한 울산바위 뒤에 금강산이 희미하게 웅크리고 서있었다. 내 생애 가장 멋지고 가장 행복한 설악 산행이었다.
IMF로 전국이 힘들던 때 뒤숭숭한 2월 어느 날 나는 친구와 겨울 설악에 있었다. 비선대에서 양폭으로 올라가든 중 전화가 왔다. 본부장으로 승진 하였는데 오늘 오후 4시에 본점에서 사령장 수여식이 있으니 반드시 참석 하라고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직장인들이 무더기로 퇴직하는데 승진도 생각 밖이었지만 우선 본점에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급하게 하산하면 서 옷은 서울로 출장 가는 사람에게 부치고, 서울에서는 조카를 시켜 내 옷을 받을 준비를 하게하고, 친구에겐 내 배낭과 카메라를 모두 맡겨 혼자 부산으로 내려가게 하고, 택시를 불러 신흥사로 오게 하곤, 음식점에 부탁하여 더운 물로 머리부터 씻고 택시를 타고 전 속력으로 서울로 달려갔다. 한 겨울 얼어붙은 진부령 산간도로를 시속 100킬로 정도 달리고 또 서울 지리를 잘 모른다 하여 워커힐 호텔쯤에서 서울 택시를 갈아타고,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겨우 본점에 도착하니 오후4시1분 그렇게 본부장 사령장을 받았다. 택시비 24만원 + 2만원 이것도 생애 최고의 택시비를 썼다. 친구는 나의 배낭과 자기 배낭, 카메라가방까지 하여 짐을 3개나 들고 버스를 탔는데 마침 승객이 아무도 없어 화장실 갈 때도 카메라 가방등 짐도 남에게 맡기지 못하고 아주 혼이 나고 산행도 나 때문에 망쳐 버렸다. 모두들 007작전하듯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그 이후 모여 술 한 잔 나누었다.
설악은 그 겨울에도 이상한 이유로 나를 입산 시켜 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보다 사람이 좋아서 가는 것이다. 나 때문에 고생만 실컷 하고 산행을 망친 친구에겐 언젠가 신세를 갚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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